본문 바로가기

나의 미래 일의 미래/인공지능 지질학 우주학 에너지

인공지능 AI 의 첫 번째 겨울

인공지능 AI 의 첫 번째 겨울


퍼셉트론을 발명한 로센 블래트와 고등학교 동창인 민스키 박사도 당시 생물학적 신경망에 영감을 얻어 퍼셉트론과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두 과학자는 매번 컨퍼런스에서 만날 때마다 퍼셉트론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서로 논쟁을 벌였는데, 로센블래트는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퍼셉트론 이론이 적용될 수 있음을 주장했고 민스키는 매우 한정적인 경우에만 퍼센트론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69년 마빈 민스키와 그의 동표 세이무어 퍼페트는 저서를 통해 로센블래트의 퍼셉트론 이론의 한계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즐, 로센블래트의 퍼셉트론은 'AND' 또는 'OR' 같은 선형 분리가 가능한 문제에서는 적용할 수 있지만 'XOR'문제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들의 발표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던 학계의 뜨거운 분위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잃게 됐고, 심지어 그들의 발표를 노골적으로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공지능이 점점 학계에서 외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비 지원도 줄어들었다. 이를 '연결주의론의 포기'라고 한다. 당시 인공신경망을 연결주의론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닉을 러시아가 쏘아 올리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곧 미국은 국립연구회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출간한 과학 논문을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으로는 이렇다 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66년 결국 미국 정부는 기계번역에 관련된 연구자금 지원을 전격 중단한다. 그때까지 쏟아부은 연구비는 당신 기준으로 약 2천만 달러였다.


1960년대에 미국 인공지능 연구자금은 주로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에서 나왔는데, 인공지능 분야라고 하면 거의 조건없이 연구자금을 대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연구비는 마빈 민스키, 존 매카시, 허버트 사이먼, 알렌 뉴웰 프로젝트에 집중됐는데 연구 내용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


19690년 소위 맨스필드 수정안이 의회에 통과되면서 국방 연구 예산을 좀 더 실무적인 분야에 투자하는 기조로 정책이 바뀐다. 이에 따라 방향성 ㅍ없는 기초 연구를 지양하고, 목표지향적인 단기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실질적인 효용성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연구 계획이 아니면 인공지능 분양에서 연구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다.


한편 영구에서도 인공지능 분야가 처한 상황은 좋지 않았다. 1971년 맨체스터 대학 교수인 제임스 라이트힐 경은 영국 의회로부터 '영국 인공지능 연구 현황'에 대한 분석보고서 작성을 요청받는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대규모 문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규모 문제란 문제의 크기가 커지면 기하급수적으로 후속 과정이 늘어나는 문제 또는 경우의 수가 지수로 커질 때 컴퓨터로 다룰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각각 '폭발적인 조합의 증가' , ' 다루기 힘듦'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적용되는 것으로, 결국 컴퓨터 성능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각종 인공지능 연구가 중단됐고, 일부 대학에서만 근근이 연구를 이어갔다.


이처럼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인곤지능 분야에서 발생한 일년의 비관적인 사건들은 일시적인 인공지능의 침체기를 불러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것이 첫 번째 '인공지의 겨울'이다. (1974년~1980년까지 총 6년)


인공지능의 재도약


마빈 민스키와 세이무어 페퍼트가 발표한 인공신경망의 한계성, 미국의 연구자금을 쥐고 있는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프로젝트원의 연구비 삭감, 영국 의회에 보고한 맨체스터 대학 제임스 라이트힐 교수의 인공지능 비관론 등으로 촉발된 1970년대의 인공지능 겨울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그 첫 번째 사건이 1980년대에 산업게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전문가 시스템의 활약이다.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것은 사람이 보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잘 정리해 적재적소에 가장 알맞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비전문가들도 전문가 수준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문가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3개의 요소, 즉 1) 전문가의 지속과 경험을 사실과 규칙 형태로 저장한 지식 데이터 베이스 knowledge database , 2) 자문과 의사결정을 생성하는 추론엔진, 3) 사용자와 시스템 간입력/출력 인터페이스로 구성돼 있다.


VAX란ㄴ 컴퓨터로 1970년대 중형 컴퓨터 시대를 이끌었던 미국 DEC Digital Equipment Corp 은 1982년 전문가 시스템인 XCON eXpert CONfigurer 을 도입한다. XCON은 DEC을 이용해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게 주문생산을 함으로써 약 400억원의 원가 절감을 할 수 있었다. 화학제품 제조회사인 듀폰도 100여 가지 분야에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해 100억 원 상당의 원가를 절감했다. 조사에 의해 1980년대 말까지 미국 내 500대 기업의 절반이 점누가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유지보수에 비용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문가 시스템에서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어떤 규칙을 통해 비전문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추론엔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추론엔진은 일반적으로 IF-THEN 구조로 돼 있는데, 만약 확보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정보 간 상관성이 결여된 경우 또는 애매한 언어로 표현된 지속과 정보가 포함돼 있는 경우네는 불확실한 추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극보하기 위해 베이즈 기반 추론을 통해 확률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추론엔진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접근법 중 또 다른 예가 퍼지 이론 Fuzzy theory 이다.

퍼지 이론은 0과 1과 같이 두개의 값만을 취할 수 있는 이진논리와는 달리 0과 1사이에 여러 가지 값을 가질 수 있는 다중값 논리인 수학 원리다.


전문가 시스템에서 퍼지이론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지식과 경험들을 0과 1과 같이 이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밸브를 천천히 돌린다, 높은 온도에서 스위치를 끈다. , 정밀하게 조작해야 한다 등과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초의 퍼지전문가 시스템은 1975년 영국 런던대학교의 에브라임 맘다니 교수가 증기기관을 제어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맘다니 방법은 4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1단계는 이진형으로 된 입력값을 연속된 범위 내 어떤 값으로 전화하는 퍼지와, 2단계는 규칙에 기반한 퍼지값의 연산, 3단계는 여러 규칙에서 출력된 결과의 통합, 그리고 4단계는 통합된 퍼지형의 결과값을 다시 이진형으로 전화하는 역퍼지화이다. 이러한 맘다니 방법은 퍼지 규칙에 있는 전문성을 추출하는 데 탁우러한 선능을 보여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 인공지능이 활용된 또 다른 사례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는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수집, 정리, 분석해서 사업전략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라는 용어는 1865년 리처드 밀러 데븐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은행가인 헨리 퍼네스경이 어떻게 경쟁사보다 먼저 정보를 입수하고 이요하는지를 소개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1958년 IBM 연구원인 한스 피터 룬이 IBM 저널에 "비즈니르 인텔리전스 시스템"이라는 기사를 통해 좀 더 명확히 산업계에서 사용될 수 있는 용어로 정의하면서 지금까지 사용돼 오고 있다.


1956년 IBM은 하드디스크를 개발하고 플로피 디스크 및 레이저 디스크를 연속으로 개발에 성공한다. IBM의 이러한 저장장치들이 기업의 주요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업 내에 데이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업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처리해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소위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의 DSS 기술 수준은 기업이 결정적인 효과를 얻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1980년대 데이터 웨어하우스 기술과 데이터 마이닝 기술이 도입되면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는 산업계에 핵심적인 도구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트렌드에 따라 기업 내부의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기업 외부의 데이터까지 분석하면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의 적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업 외부의 데이터는 소셜미디어나 IOT Internet of Things 등과 같은 센세에서 발생하는 비정형 데이터 unstructured data를 말한다. 또한 머신러닝의 기법이 고도화되고 이러한 기술이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에 적용되면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는 더 똑똑한 기업의 두뇌로 진화하고 있다.


---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오래된 인공지능.

책에서만 봤던 일이 이제 현실에서 일어난다.




T map에서 "'아리야~" 부르면 음성 검색도 해주고, 앱도 열어주고.

카카오프랜즈도 "헤이 카카오" 하는 시대.

아 기가 지니도 있나?


여튼 여기저기 다들 이름이 붙어서 슬슬 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선진국의 사례로 볼때 어쩐지 너무 뒤쳐진 느낌을 감출수 없다.

쇄국 정치로 국내상황이 완전 고립되었던 조선시대를 떠올려 보면

개방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 딱 지금 아닐까 싶다.

더 늦으면 아예 따라갈 수 없이 그저 그들의 플랫폼에서 놀아야 할듯..


지금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잠식당하는 대한민국..

인공지능도 그렇게 될거 같은 느낌적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