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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지오그라피 화성 Mars 1

화성 Mars


1. 매력쟁이 화성

과학으로서 우주학 천문학등이 태동한 때부터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행성중에서도 화성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화성은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듯 했고, 규칙을 알수 없는 무한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를 대체할만한 제2의 지구로 떠오르고 있는 화성!

수수께끼의 행성을 조금씩 알아보자!





화성 초기의 역사

화성은 지구의 하늘에서 항상 보이는 존재였다.

밝게 빛나고 붉게도 빛나는 "별"

선조때부터 신의 계시처럼 생각되어 특히 주목을 많이 받았다.


화성은 우리 육안으로 보이는 다섯 행성 가운데 하나로 점성술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선사 시대부터 이미 특별하고 중요한 대상이었다.

"행성 plant"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떠돌이"라는 뜻이다.

하늘에 붙박인 별자리를 배경으로 어슬렁 어슬렁 움직인다는 특징 때문이었다. 특히 해성은 황도라 불리는 열두가지 별자리 사이를 이동하는 듯 보였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행성마다 어떤 특성을 부여했고,행성이 황도의 어느 별자리에 위치하느냐가 지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이것이 점성학의 근간이다. 

이처럼 행성의 위치로 지구의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면서 행성의 운동을 예측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점섬술사들은 붉은 색상 때문에 화성을 전쟁이나 피를 흘리는 사건과 연관 지었고, 전쟁과 전염병의 신인 네르갈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우주학 천문학 지식 대부분을 이어받은 고대 그리스인들도 화성을 전쟁의 신 아레스와 연관지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신 이름은 조금씩 다른데, 고대 로마에서 전쟁의 신 이름은 마르스MARS였고 역시 화성과 관련 있었다. 이는 오늘날 영어에서 화성을 나타내는 단어와 같다.


화성은 그 운동의 특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난히도 수수께끼 같은 행성이었다. 우선 화성은 동쪽으로 이동하는 일반적인 움직임 전에 몇 달간 커다란 고리를 그리며 서쪽으로 역행하는 특성을 보였다. 훗날에 가서야 속도가 느린 화성을 지구가 앞지를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그 이전까지 화성의 역행운동은 큰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게다가 화성은 속도도 제멋대로 바꾸었다. 이는 궤도의 모양이 특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고대와 중세 사람들이 행성 운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구가 우주한 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으면 태양과 달과 행성들이 각각 구모양의 껍질에 붙어서 돈다는 학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러한 지구 중심 체계로 화성과 다른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 체계를 도입했다.


주전원이란 주 궤도위에 있는 작은 궤도를 말하는데, 그리스인들은 행성이 이 주전원을 따라돈다고 보았다. 2세기에 그리스계 이집트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완성한 주전원 설은 이후 1500년 가까이 철학적, 종교적정설로 떠받들어지며 이렇다 할 도전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중세 후반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기술이 발달하여 연구자들이 행성의 궤도를 점점 더 정확히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화성의 궤도가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이에 따라 지구를 중심으로하는 이론으로는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1543년 폴란드의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의 궤도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태양이 우주 한가운데에 있으며 지구를 비롯한 여섯개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 중심설을 제시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우주를 이해하는데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인정받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기성 종교계와 학계의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도 궤도가 완벽한 원형이라고 주정했기 때문에 화성의 속도 변화를 설명하려면 주전원 가설에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덴마크의 뒤대한 학자 튀고 브라헤가 화성의 움직임을 어느 때보다 정밀하게 그려내자 이를 토대로 그는 한층 더 복잡한 혼성 우주 모형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601년 브라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독일인 제자이며 수학자이자 점섬학자이던 요히네스 케플러가 스승의 학설에서 영감을 얻어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1609년 화성을 비롯한 여섯 개 행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학설을 제시했다. 그 행성들의 궤도가 실은 두가지 초점중 하나를 태양으로 하는 타원형이고 각각의 행성은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화성의 운동에 대해 더욱 세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우주학에대한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케플러의 발표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학계에는 망원경이 등장했고,이를 통해 화성만을 관측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망원경으로 본 화성


화성은 지구와가까운데도 크기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하늘에서 상당히작은 모습으로 보인다.지구와가장가까워져 최대한 크게 보일때에도 달지름의 60분의 1에 불과하다. 1610년 망원경으로 화성을처음관측한 이탈리아의 학자 갈릴레로 갈릴레이가화성을작고 불그스룸한 원반으로 묘사한것도 그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주기적으로 변하는화성의 상phase을 관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태양이 비치는 반구의 면적이 달라짐에 따라 달, 수성, 금성이 모습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화성 역시 궤도의 특정한 지점에 올떄 앞뒤를 샅샅이 들여다 볼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달이 완전히 차지 않을 때처럼 어두운 면이 조금 드러나고 밝은 면이 볼록한상으로나타나는 화성의 모습을 포착하려 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림도 없는 목표였다. 1645년에 이르러서야 폴란드의 학자 요하네스 헤벨리우스가 화성의 여러 상을 포착할수있었다. 적어도 2년에 한번씩 지구와가장 가까워져 가장크게 보일때면 뚜렷한 원반 형태로 관찰될 정도로 망원경의 크기가 커지고 성능도 향상되었다. 얼마지 지나지 않아 학자들은 화성 지표면의 특징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예수회 사제이던 다니엘로 바르톨리는 1644년 화성 지표면에서 두가지 어두운 부분이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역시 이탈리아인인 조반니 바티스타 리촐리프란체스토 마리아 그리말디도 그 후 수십년에 걸쳐 화성의 여러가지 특징을 보고했다.


1659년에는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최초로 화성의 지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화성의 지형이 움직이는 것을 바탕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화성의 자전주기를 측정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나는 1666년 하위헌스가 측정한 자전주기를 한층 세밀하게 계산하여 화성의 하루를 밝혀냈다. 

놀랍게도 현재 알려진 자전주기인 24시간 37분에 비해 3분 느린데 불과할 만큼 정확한 수치였다. 카시니는 오늘날 빙관으로 불리는 밝은 지점을화성 남극에서 최초로 포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1672년 하위헌스가 화성의 북극에도 남극과 마찬가지로 밝은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망원경은 그 후 100년이 넘도록 크기와 성능이 개선되지 않아 더욱 정밀한 관측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화성의 남극과 북극처럼  두드러지는 지형과 관련하여 놀라운 관측 결과가 계속해서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