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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 일의 미래/인공지능 지질학 우주학 에너지

우주학 화성 바이킹 궤도선

우주학 화성| 바이킹 궤도선

 

NASA의 1세대 마니러와 파이어니어 우주 탐사선이 우리 태양계를 최초로 정찰하는 모험에 나선 동안 좀 더 과감한 2세대 탐험 계획이 추친되고 있었다.

 

아폴러 달 계획에 엄청난 관심과 투자가 쏟아졌으며, 최초의 달 착육을 기다리고 있던 당시에 유인 달 기지를 건설하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일이야말로 당연히 그 다음 단계로 여겨졌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서는 지표면 조건에 관한 상당한 사전지식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1966년 보이저 화성 계획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아폴로 응용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보이저 화성 계획에는 새턴 5호 로켓과 최션형 로봇 착륙선 서베이어 등 아폴로 시대의 기술이 동원되었다. NASA는 다시 한번 비슷한 탐사선 두대를 화성에 보내되 새턴 로켓 한대를 사용하여 한꺼번에 발사하기로 했다. 각각 11톤에 달하는 탐사선 두 대가 화성 궤도에 진입한 직후에 분리되어 하나는 궤도선의 역할을 하고 다른 하나는 착륙선의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궤도선은 우주 공간에서 화성을 조사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임무를 착륙선은 지표면으로 하강하여 토양과 대기 등 지표면 조건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보로하는 임무를 띠었다.

1967년에는 1973년등 발사 시간대마다 한 쌍의 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나중에 발사되는 착륙선에는 전보다 좀 더 까다로운 실험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NASA의 예산 삭감 행진이 시작되면서 아폴로 응용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보이저 화성 계획이 날아간 것은 물론이고 달 기지를 건설하고 태양계 깊숙한 곳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겠다는 원대한 꿈도 깨졌다.

그럼에도 무인 화성 탐사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NASA의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보이저 화성 계획의 목표 대부분을 실현할 방법을 찾아냈다. 보이저를 계속하는 이 바이킹 계획은 마리너 8호와 9호의 설계를 변형한 궤도선과 전에 비해 훨씬 더 가볍고 단순한 착륙선을 짝지어 화성에 보내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번에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두 대를 동시에 발사하리고 했지만 너무 크고 비싼 새턴 5호 대신에 곧바로 입수할 수 있는 타이탄 3-E호 센토르 로켓을 발사체로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온갓 절감 조치를 감행했음에도 바이킹 계획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1975년 8월과 9월 우주선을 발사할 당시에는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화성 탐사 임무 가운데 바이킹 계획만큼 큰 비용이 든 것은 없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바이킹 계획은 거액의 투자에 걸맞은 과학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두 우주선 모두 거의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바이킹 1호는 1976년 6월 19일 화성 궤도에 진입했고 바이킹 2호도 8월 7일 그 뒤를 따랐다. 바이킹 1호와 2호의 모선은 착륙할 수 있을 만한 지점을 한 달 동안 소사한 후 착륙선을 분리하여 낙하산으로 하강시켰다. 이 부담을 덜고 나자 두 궤도선은 각자 종합적이고 자세한 화성 지도를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각 궤도선은 비디콘 카메라 한 쌍을 이용하여 지표면의 가시 범위를 전자 이미지로 포착해 지구로 전송했다. 또한 적외선 전자 이미지로 포착해 지구로 전송했다. 또한 적외선 분광기로 대기권의 수증기를 분석하고 복사계로 지표면 온도를 측정했다. 바이킹 2호의 궤도선은 1978년 2월까지 임무를수행하다 계획에 따라 안전한 고궤도로 띄워 올려졌는데, 추진 시스템의 연료가 누출되면서 작동을 중지했다. 바이킹 1호의 궤도선은 그로부터 2년 더 작동한 후에 대기 궤도로 올려졌다.

바이킹은 마리너 9호에 비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자세한 화성 지표면 사진을 전송했다. 궤도선들이 계획한 것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자 NASA의 엔지니어들은 궤도선들을 화성 지표면과 한층 더 가까운 궤도에 띄웠다. 그 덕분에 바이킹 궤도선들은 마리너 호에 비해 해상도가 네 배 정도 개선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바이킹 호가 보낸 사진 자료들은 컴퓨터로 합성되어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화성 전체 지도의 토대가 되었다. 그 지도에는 범람 수로, 강, 배수로 등 지구 지형과 비슷하지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형이 수없이 드러나 있었다.

 

우주학 화성 | 바이킹 착륙선

 

바이킹 착륙선은 화성 지표면에 처음으로 도착한 우주선이다. 한달 동안 궤도 정찰을 수행한 후 모선인 궤도선으로부터 분리된 두 대의 착륙선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저지대 평원 두 곳을 향해 하강했다.

 

 

 

 

화성 대기권으로의 제어 하강을 계획하는 일은 항상 그러하듯이 바이킹 설계자들의 골머리를 썩였다. 착륙선의 무게를 572킬로그램으로 줄인 것도 그 때문이다. 먼저 착륙선 밑면에 완만한 원뿔 모양의 방열 장치를 부착했다. 착륙선이 화성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 마찰로 받는 열을 견뎌내고, 낙하산을 펼쳐야 하는 약 6,000미터 상공까지 감속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화성같이 대기가 희박한 곳에서는 낙하산에 의한 감속만으로는 속도를 충분히 줄일 수 없다. 설계자들은 착륙선이 고도 1,500미터에 이르럿을 떄 착륙선에 장착딘 역추진 로켓을 점화시킴으로써 지표면에 연착륙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다만, 점화될 때 착륙지 주변이 손상되거나 지표면 물질이 날아가 연구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되었다. 이를 고려하여 역주진 로켓을 장착하는 것도 로켓 설계자들 앞에 놓인 도전과제였다.

아무튼 바이킹 1호의 착륙선은 1976년 7월 20일 크리세 폴라니티아 지역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그 즉시 화성 지표면을 담은 첫번째 사진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착륙지는 폭넓게 선정되었는데, 크리세 플라니티아의 범람원 지형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과거에 일어났던 대홍수의 흔적이 남아 있으므로 화성의 물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정확한 착륙 지점은 착륙 직전에 변경되었다. 지구의 레이더를 사용해 해당 지역의 지형 험준도를 짐작하긴 했으나 바이킹 궤도선의 사진을 통해 예상외로 지형이 험준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편 바이킹 2호의 착륙선은 북부 평원의 유토피아 플라니티아를 목표로 했다. 용암 평원이었던 원래 특성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지역으로 생각되어서다. 이번에도 정확한 착륙 지점이 막판에 바뀌었지만, 착륙선은 1976년 9월 3일 화성 표면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그러나 착륙지를 변경했음에도 그곳에는 작은 돌들이 무수하게 널려 있었다. 고해상도 사진으로 사전에 그 위험을 알았더라면 결코 착륙지로 선택도지 않았을 지형이었다.

바이킹 착육선은 착륙한 후에는 그 이상 이동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표본 채취를 위해 부착된 팔 덕분에 가까이 있는 토양을 퍼 올리고 분석 할 수 있었다. 착륙선들은그 외에도 복잡한 장비 세트를 갖췄다. 토양분석용 분광기, 간단한 자기 탐지기, 지진 발생가능성을 탐지하는 지진계, 높이 매단 기상 관측용 기구, 지표면촬영용 파노라마 카메라등 개발하는데 바이킹 계획의 막대한 예산 상당 부분이 들어간 장비들이다. 심지어 화성 토양에서 미생물의 흔적을 탐지하는데 필요한 실험 장비까지 탑재되어 있다. 바이킹 착륙선은 무선 안테나를 사용하여 성공 높이 있는 궤도선과 교신하는 것은 물론 방향 조정이 가능한 조향성 파라볼라 안테나로 지구와 직접 교신 할 수도 있었다.

두 착륙선은 겉보기에 판이한 지역에 착륙했으나 두 지역에서 수집된 토양 표본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이산화 규소와 철 성분이 많은 것으로 볼 때 두 지역의 토양 모두 화산성 현무암이 풍화된 것임을 시사했다. 그 외에도 두 지역 모두 마그네세슘, 황산, 알루미늄, 칼슘 등이 흔했으며 지구에 비해 알칼리 금속은 드물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반대 편에서 채취한 토양이 비슷한 까닭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비슷한 먼지 입자가 바람에 실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여 토양을 이루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두 착륙선은 생명체를 탐지하기 위해 네 가지 실험을 했다. 먼저 기체 크로마토그래프-질량 분광 분석을 통해 토양 속의 물질을 증발시킨 다음 화학 조성을 분석했다. 기체 교환 실험으로는 기체를 흡수하여 대사 처리를 하는 미생물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14를 이용한 표지분자 방출 실험을 통해 영양분의 흡수와 방출이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열분해 방출 실험에서 토양이 탈때 유기 화학물질이 방출되는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누구나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태양계의 소행성이나 혜성에서조차 흔한 유기 화학 물질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표지 분자 방출 실험에서만 토양에서 유기 반응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결과나 나왔으나, 실험 결과를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오늘날까지 논란 거리로 남아있다.

두 착륙선 모두 기대했던 작도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았다. 바이킹 2호는 1980년 4월까지 작동하다가 배터리 고장으로 멈췄다. 바이킹 1호는 1982년 11월까지도 작동을 계속했지만, 지상 관제소에서 잘못된 명령을 보내는 바람에 지구와의 통신이 영영 두절되고 말았다.